맨유의 역대 최고 골키퍼 - 피터 슈마이켈(Peter Schmeichel)

Posted by hisapa
2013. 2. 22. 07:04 스포츠이야기


맨유의 역대 최고 골키퍼 - 피터 슈마이켈(Peter Schmeiche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로, 나아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전설의 골키퍼로 이름날린 남자, 피터 슈마이켈입니다.

피터 슈마이켈은 폴란드계 아버지와 덴마크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폴란드 국가대표로 뛸수도 있었던 그는 아버지가 덴마크로 귀화하면서 덴마크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덴마크 청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그라삭세 헤로 청소년클럽에서 자연스래 성인팀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글라삭세 헤로에서 흐비도우레, 브뢴뷔IF로 이적 덴마크에서만 10년의 프로생활을 한 그는 덴마크컵 우승과 강등된 팀을 지키며 1부리그 복귀등의 활약으로 자국에서는 유명한 선수로 거듭나게 됩니다. 자국에서의 활약을 유심히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퍼거슨 할아버지입니다. 퍼거슨 할아버지를 만나며 피터 슈마이켈은 전설의 발자취를 걷게 됩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유명하지 않았던 그는 이적료 55만파운드의 비교적 저렴한 이적료로 맨체스터에 입성하게 됩니다. 잉글랜드에서 유명하지 못했다뿐이지 17살에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10년이란 시간동안 덴마크 리그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유능한 선수였습니다.

 

 

  프리미어 입성과 함께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며 퍼거슨의 믿음에 보답합니다. 그리고 맨유의 팬들은 그에게 열광하게 되죠. 193cm의 큰키와 순발력, 안정적인 골키핑을 앞세워 리그 최고의 키퍼로 성장해갑니다. 비록 첫해에 국내팬들에게도 익숙한 리즈 유나이티드에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여러게임에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며 실력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이듬해 잘나가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93-94시즌 맨유와 라이벌 리버풀의 경기에서 3-3으로 비겼기 때문인데요. 당시 맨유는 3-0으로 앞서가다가 동점을 허용하며 승점2점을 더 못챙겼기 때문이죠. 화가난 퍼거슨감독은 슈마이켈을 찾아가 경기중 흘린땀을 그의 별명처럼 드라이기로 말려주었고, 화가난 슈마이켈은 그의 말에 반박하며 고성이 오갔다고 합니다. 피터 슈마이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실점들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꽤 좋은 경기를 했었다. 그러나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 마자 내게 다가와서 따졌다. 내가 찬 골킥들은 경기장 중간으로 날아갔고, 상대 팀의 닐 러독이 그 공들을 헤딩으로 따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감독의 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정말 엄청난 말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고, 끝에 가서는 나도 매우 우울해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었다.”

 

“나는 분명히 도를 지나친 행동을 했고, 논쟁이 끝난 후 샤워를 하러 갔다. 그러나 다음날 퍼거슨이 자신의 사무실에 있지 않아 무척 화가 났다. 결국 나는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했고 팀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

 

“다음날 나는 감독의 사무실로 불려갔고 감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잘 들어라. 나는 너를 팀에서 내보낼 수 밖에 없다. 나는 선수가 내게 그 따위로 말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그것은 내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좋아요.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러나 내가 너무 심했다는 깨달았고 결국 사과를 했다. 퍼거슨은 자신에게 보다는 팀 동료들에게 사과하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겨우 분위기는 수습되었고 슈마이켈은 이후 맨유에서 거칠것 없이 승승장구합니다. 96, 97, 99 프리미어 리그 우승,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맨유에서의 시즌은 트레블에 크게 공헌하며 확실한 마무리를 찍게 되죠. 그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슈퍼세이브로 팀을 여러번 구해냈는데요.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1-1상황에서 당대 최고의 쉐도우 스트라이커 베르캄프의 페널티킥을 슈퍼 세이브 해내며 경기를 지켜냈고, 후에 긱스의 환상돌파에 이은 결승골로 맨유는 승리를 이끕니다.

  맨유에서 1999년 그는 프리미어리그의 살인적인 일정과 체력적인 부담때문에 이적을 선언하며 포르투갈의 스포르팅cp로 이적하며 프리메이라리가 1회우승에 일조하며 그의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해 냅니다. 그러던중에 다시한번 프리미어리그의 러브콜이 오는데요. 애스턴빌라에서 이적제의가 왔고 그는 다시한번 프리미어 리그에 복귀하게 됩니다.

  하지만 37세라는 노쇠한 나이는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고 , 전성기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듬해 맨유의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게 됩니다. 상당한 비난이 일꺼라는 예측은 그의 떨어진 기량으로 인해 비켜가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의 맨체스터 시티는 맨유와 비교불가의 하위팀이였기에 비난은 크게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3년 은퇴를 선언하며 맨유와 프리미어리그의 전설의 키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의 재능은 퍼거슨 맨체스터utd 감독이 세기의 영입이란 표현과 함께 그가 꼽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역대 최고의 영입 2위에 선정되었죠. 1위는 당연히 지금의 맨유를 있게한 정신적 지주 에릭칸토나입니다. 슈마이켈이 은퇴한후 반데사르가 훌륭히 매꿔줬습니다. 반데사르의 은퇴후 아직도 그의 대체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은퇴이후 중계방송에서 해설과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때 2010년 디스커버리 채널의 더러운 직업들이란 코너의 MC로 돼지거름 치우기등 더러운 일을 해내는 직업을 몸소 체험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본받아 축구선수, 그것도 키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원래 맨체스터 씨티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현재는 4부리그 노츠카운티에서 키퍼로 활약중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