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만날 때 마다 미연은 초라해진다
그들을 만날 때 마다 미연은 초라해진다
아무거나 많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초라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미연은 그들을 보고,
그들을 듣고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는 것에서 묘한 희열을 느낀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환상, 그리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애절함.
그것은 미연이 외면 할 수 없는 중독이다.
미연은 ‘ 패리슨 힐튼 - 돈을 벌려고 일하는지 몰랐다’
라는 기사를 클릭한다. 힐튼 호텔의 상속녀인 패리슨 힐튼은
세계에서 유명한 백만장자다.
만약에 자신이 힐튼 호텔의 숨겨진 상속녀 였다면,
아니 소박하게, 갑자기 5억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그 돈으로 뭐부터 하지 - 미연은 상황을 가정하고 진지하게 계획을 세운다.
실제상황인 양 계획을 세울 때면,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그녀는 종종 이런 망상을 한다.
이런 계획을 적어놓은 공책만 해도 11권이나 된다.
저번엔 꼬박 삼일을 밤새 계획을 세웠던 적도 있었다.
만약 그런 망상이 미연에게 현실로 다가온다면 미연은
그 누구보다도 돈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시계는 금세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미연은 이런 망상을 8시간 째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녀는 침대에 몸을 내던진다.
오전에 있었던 기괴한 현상 때문일까,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피곤함이 쏟아진다.
미연은 당장이라도 침대에 스며들어 버릴 것 같았다.
아침 7시 30분 어김없이 휴대폰은 듣기 불편한 새소리를 지저귄다.
여전히 그녀는 46분동안 샤워를 하고 여유 있게 화장을 하고,
옷장을 열어 옷을 고르고, 불편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구두를 신고, 17분 지각을 하고, L과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듣고,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들과
그녀 자신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집에 와서 노트북을 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