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미옥은 김감독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벌써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들고 있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서군은 재빨리 달려와 지퍼라이터를 김감독의 얼굴에 들이민다. 평소 미옥 앞에서 음담패설도 서슴지 않는 김감독이지만 그녀가 자리에 없으면 그 자리에서 혼자 말없이 담배나 피우는 신세가 되는 것이 실상 그의 처지였다.
아무도 그의 곁에 서려고 하지 않았고, 말을 건네지도 못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미옥은 김감독에 대한 약간의 연민이 생기는 듯 했지만 자신마저 사무실 안에 앉아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아서 그에게 찰나의 불편을 안겨주기로 마음먹고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었다. 곧 어머니 기일이지?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김감독의 말을 미옥은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미옥이 복도로 나서자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열심히 대사를 삼키고 있었다.
삼키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이 내지르는 말들은 한데 뒤섞여 다시 자신들의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쓴 대사들이 미옥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문 앞에 붙어 있는 오디션장이라는 문구만 없었다면, 혹자는 마치 낯선 이국땅에서 자국어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모아놓고 각자 알아서 떠벌려보라고 하는 꼴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