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한 번 열차표를 검색했다

Posted by hisapa
2016. 6. 14. 15:17 카테고리 없음


 

 

 

 

 

 

나는 다시 한 번 열차표를 검색했다

 

 

 

 

 

 

 

 

 그러고 있자니 내 뒤의 사람이 고개를 쑥 내밀고 나를 흘금거렸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이번에도 내가 구할 수 있는 차표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동발매기를 떴다. 그리곤 그 줄의 맨 뒤에 가서 섰다.

이십 분쯤 기다리자 다시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차표는 없었다.

다시 줄을 섰고, 차례가 돌아왔고, 차표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열한 시가 넘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열차표를 끊었다.

역을 빠져나왔다. 일단 하룻밤 묵을 곳을 구해야 했다. 지하철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역 맞은편에 24시간 동안 운영하는 찜질방이 보였다. 나는 그쪽을 향해서 터덜터덜 걸었다.

기차는 조금 전에 서경주역을 출발했다. 그곳에서 빨간 털모자의 노인들이 내렸다. 그 노인들은 경주에서 무엇을 할까? 박물관에 갈까? 아니면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을 볼까?

나는 경주를 떠올리면 무엇보다도 먼저 왕릉이 생각난다. 오릉, 천마총, 선덕왕릉, 흥덕왕릉, 법흥왕릉, 괘릉……. 해거름에 왕릉에 기대앉아서 무덤의 주인을 상상하면, 번쩍이는 금관을 쓴 왕이 문득 허공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왕릉 중에서도 나는 특히 흥덕왕릉을 좋아한다.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짝을 만나지 못한 내 처지로서는 그토록 애절한 왕의 사랑이 부럽기만 하다. 솔 향과 바람, 온갖 새소리가 에워싼 왕의 무덤은 피라미드나 타지마할에 비하면 그지없이 소박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흥덕왕의 사랑이 더 숭고하게 느껴진다.

목적지가 가까워져 오니 또 큰아버지 생각이 났다. 자기 휴대전화기에 큰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저장해달라던 그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왔던 그해 여름에 떠났다.